* 8.3(금)
▶ 서안성벽, 화청지, 병마용, 지하궁전, 진시황릉, 회족거리 관광
▲ 호텔로비에서
▲ 전용차량
▲ 서안성벽 관광
▲ 서안성벽 단체
▲ 호텔방 파트너 이음 형님
서안성벽 관광후 화청지로 이동
시내에서 동쪽으로 30km 떨어진 리 산(骊山) 일대는 알아주는 온천 지대다. 3,000년 전 주나라 때부터 당나라 때까지 황제와 조정 대신들이 애용했던 온천이자, 당나라 6대 왕이었던 현종(玄宗)과 양귀비의 로맨스 무대였던 화청지가 유명하다. 747년에 현종은 온천을 좋아하는 양 귀비를 위해서 이곳에 대규모 공사를 실시했다. 온천을 확장한 것은 물론, 새로이 궁전을 짓고 궁전 주변을 성벽으로 둘러싸 ‘화청궁(华清宫)’이란 별궁을 완성했다.
양 귀비는 서시, 왕소군, 초선과 함께 중국의 4대 미인으로 꼽힌다. 그녀는 현종보다 35살이나 어렸고, 심지어 현종의 18째 아들인 이모의 부인이었다. 그러니까 시아버지였던 현종이 며느리의 미모에 반해서 부인으로 삼은 것이다. 호사가들은 중국 역사상 둘도 없는 태평성세를 구가하던 당나라가 멸망한 이유 중 하나는, 현종이 양 귀비에게 눈이 멀어서 정치에 해이해져서라고 말한다.
지금도 매일 43℃의 온천수가 120톤씩 샘솟는다는 화청지에서 그녀는 온천을 즐기며 매끄러운 피부를 항상 유지했다고 한다. 당시 현종과 양 귀비가 사용하던 온천탕이 그대로 보존되어 여행객을 맞이한다. ‘연화탕(莲花汤)’은 현종이, ‘해당탕(海棠汤)’은 양 귀비가, 그보다 먼저 만들어진 ‘성진탕(星辰汤)’은 태종인 이세민이 애용했다.
왕이 사용하던 온천 유적 오른쪽에 주룽 호(九龙湖)라는 호수가 있다. 푸른 물 위로 호숫가 풍경이 반영되어 제법 운치가 있다. 사이사이로 당나라풍 정자와 회랑이 이어지고, 양 귀비의 백색 석상이 눈에 띈다. 북쪽에 있는 비상전(飞霜殿)은 밤낮으로 미모를 가꾼 양 귀비가 현종을 침실로 이끌었던 둘만의 처소다.
한편, 화청지는 중국 현대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 시안 사변(西安事变)의 무대이기도 하다. 1936년 국민당 당수 장제스의 부하였던 장쉐량이, 공산당과의 내전을 중지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함께 싸울 것을 요구하며 일으킨 일종의 쿠데타가 시안 사변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민당과 공산당은 제2차 국공 합작을 맺어 내전을 중지하고 항일 전쟁을 수행했다. 중국 역사에 있어 중요한 장소이다 보니 화청지는 중국 단체 여행객으로 늘 붐빈다.(이상 백과사전)
▲ 당 현종과 양귀비 조형물
▲ 화청지 단체
▲ 입장권
5개의 온천탕을 관람하는데 날은 덥고
▲ 양귀비상
화청지 관광후 지하궁전(진시황릉 묘 상상궁전)
진시황릉은 아직 발굴을 안하고 있는 상태로 그 묘를 만들때 과정등을 전시한 지하궁이다.
▲ 옥으로 된 조각품
▲ 진시황릉 만드는 과정
▲ 병마용 만드는 과정
지하궁전 관광후 점심을 현지식으로...
▲ 고추장으로 양푼이 비빔밥을 만들어 맛있게 ㅎㅎ
식사후 병마용 관광지로 이동
▲ 병마용
1974년 우물을 파던 농부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된 병마용 파편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2,200년 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진시황릉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병마용이 묻혀 있던 갱은 진시황릉에 딸린 180개 부장 갱의 일부로, 진시황릉의 가장 바깥 둘레에 있는 지하 갱에서 흙으로 구운 병마용이 대량 출토되었다. 병마용은 진시황의 사후 세계를 지키는 병사들이었다. 놀랍게도 출토된 병사들 얼굴이 저마다 다르고, 실제 사람처럼 키가 170~180cm에 달했다. 예술성으로 따져도 현실주의를 완벽하게 따른 걸작이었다.
가장 먼저 발굴된 1호 갱에만 6,000점의 병마용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중 완벽하게 복원을 마친 1,050여 점의 병사가 발견 당시의 대형으로 서 있다. 2년 뒤인 1976년에 2호와 3호 갱이 추가로 발견되면서 병마용 갱은 중국의 고대사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병마용 박물관을 관람할 때는, 갱이 발굴된 순서와 반대로 3호 → 2호 → 1호 갱 순서로 둘러보면 더 흥미롭다. 1호 갱에서 발굴된 병마용이 가장 많고 웅장해서 대미를 장식하기에 좋다.
3개의 갱에서 발굴된 테라코타 병사들과 청동 전차 및 무기를 전시해 놓은 문물 전시관도 빼놓아서는 안될 볼거리다. 특히 1980년에 진시황릉 묘역 부근의 봉분에서 발굴한 청동 마차 2량이 볼 만하다. 진품은 아니지만 진시황이 내세에서 사용할 용도로 만든 전차가 아주 멋지다.(이상 백과사전)
병마용을 발견한 농부는 세분으로 현재 인근 상점을 대규모로 운영하고 있다한다.
▲ 병마용 입장권
▲ 단체
▲ 아직도 발굴하고 있는 병마용
▲ 저 표시된곳이 최초 발굴지점
▲ 아직도 발굴공사중
문화재 보호를 위하여 별도의 에어컨을 가동치 않아 내부는 무지 덥다.
▲ 아직도 발굴공사중 - 말 엉덩이만 나와있고
▲ 병마용 관광후 버스로 10여분 이동하여 실제 진시황릉을 찾는다.
▲ 진시황릉
▲ 들어가보는게 큰 의미가 없어 밖에서 단체로 갈음
마오쩌둥이 생전에 “공자보다 더 위대하다.”라고 평가했던 인물이 진시황(秦始皇, BC 259~210년)이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하고 스스로를 황제라 칭했던 시황제는 38년간 70만 명을 동원해 사후에 묻힐 지하 궁전을 조성했다. 진나라의 도성이었던 셴양(咸阳)을 모방해 지었는데, 총면적이 56.25㎢에 달하며 병마용 박물관에서 1.5km 떨어져 있다. 현재의 고고학 발굴 기술로는 유물을 훼손하지 않고 온전히 발굴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 무덤 내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앞으로 50년 동안 발굴 계획이 없다고 한다.
진시황릉 내부는 사마천이 쓴 <사기(史记)>에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무덤 천장에 천체를 그렸고, 바닥에는 진나라 제국의 지리를 묘사했으며, 수은을 사용해 강과 바다를 표현했다고 한다. 무덤에 매장된 진귀한 보석과 유품을 지키기 위해서 침입자가 나타나면 즉각 석궁이 발사되도록 설계했다. 무덤 입구를 영원히 비밀로 유지하기 위해서 축조 공사가 마무리되자 인부 모두를 산 채로 매장했다는 기록도 전해 온다.
1980년대 물리학적 조사를 통해 <사기>의 기록이 신빙성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무덤 안 12,000㎡ 구역에 수은이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2007년에는 무덤을 덮고 있는 흙 표면으로부터 35m 아래에 능묘 건축의 핵심인 ‘지하 궁전’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진시황릉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내부의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없을 뿐더러 76m 높이의 봉분(封坟)을 밟고 올라가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병마용 박물관 입장권을 구입하면 진시황릉도 포함되는데, 직접 눈으로 확인할 만한 것은 없다(이상 백과사전 펌)
사진 뒤편 봉긋한 산봉우리가 무덤이란다.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
▲ 샤브샤브집인데 특이하게도 음식이 회전식으로 마음에 드는 음식으로 개인별로 조리하면 된다.
▲ 식사
식사후 회족거리 탐방
▲ 오징어 튀김요리
사서 먹었는데 맛은 특유의 향신료때문에 그냥 그렇다. 회족거리에 사람이 많고 시끄러워서 30여분간 구경하고 몇가지 안주거리 산다.
▲ 서안의 특산품인 석류 쥬스
사먹었는데 설탕을 너무 많이 넣어 달다ㅎㅎ
▲ 두부요리인데 조금 먹고 만다. 향이 진하다.
▲ 30여분 쇼핑시간을 끝내고 모이는중
회족거리 쇼핑후 호텔로 돌아가는 도중 서안성 야경이 멋지고...
▲ 종고루 광장 야경
▲ 한밤에 도착한 호텔
▲ 대륙의 거봉포도 크기가 후덜덜
▲ 안주 준비중 ㅎㅎ
▲ 라면에 소주한잔하고 제일 맛있었다 ㅎㅎ
오늘 일정을 마치고 취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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